오늘이면 이제 호주로 이민을 와서 정착한 지도 만으로 5년하고 15일이 좀 넘었다. 처음에는 호주사람들이 도대체 뭐라고 하는지 몰라서 힘들었고 회사에서도 왠만하면 사람들과 대화 하는 것을 피하는 전형적인 한국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그보다는 좀 더 자신감이 생겼고. 회사에서도 호주인들이 하는 말은 대부분 다 알아듣게 되었다. 왜 다들 이민가면 영어가 제일 중요하다고 하는지 잘 알겠더라. 나름 외국에서 몇년 남짓 살았고 한국에서도 외국계 회사를 다녀 업무 영어가 가능했기에 직장에 취직을 했다고 생각한다. 다행인 것은 역시 사람은 경험의 동물인지라 영어 듣기 실력 (호주 영어는 다른 나라 영어랑 아주 많이 다르다 모음이 특히 다르고 어휘가 굉장히 달라서 캐나다 미국인들도 첨엔 까다로워 한다) 정확히 여기서 생활하고 대화하는 것과 비례한다. 

영국 본토박이 발음은 아직도 조금 알아듣는 것이 어렵다. 영어를 쓰는 회사를 계속 다녀보니 말 자체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이 말을 할때 이사람이 자라온 그리고 이 나라의 문화적 배경을 이해 하지 못해서 당황스러운 점이 더 많은 것 같다. 왜 저 말을 하지? 그럼 난 뭐라고 해야하지? 하다보면 휙 대화가 넘어간다.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어렵다고 해야 하나. 그리고 업무보고 할때에도 일 얘기만 할 뿐 관련된 context를 넣어서 풍부하게 설명하는 것이 조금 어렵고. 가끔 흥분하면 앞뒤가 뒤죽박죽 된다. 역시 언제나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참 피곤하다. 

아무튼 호주 직장 생활 5년 만에 어제 있었던 황당한 일을 여기에 적어보려고 한다. 

다음 주 월요일은 Australia Day 휴일이 있어 토, 일, 월 3일을 쉴 수 있다. 보스는 수요일부터 휴가를 갔고 나도 이번주 금요일이면 나오는 월급만 바라보고 특이할 것은 없었는데. 동료 하나가 업무 요청 이메일을 4-5개 한꺼번에 보내는데 이 사람이 맘이 급했는지 이메일 문맥도 이상하고 업무요청 내용도 내일이 아닌 것이 포함 되어있어서 물어보려고 전화를 걸었다. 

나: 네가 요청한게 이거 이거야?

동료: 니가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는데 내 말은 저거 저거야

나: 그래 내 말이 그말이야 아무튼 그거 해달라는 거지? 근데 그 일은 내일이 아니고 니가 해야 되는거 알지? 어떻게 하는지 모르면 내가 가르쳐 줄까?

동료: 아니 나 그거 할 시간 없어. 일이 너무 많고 .. (업무를 나열하기 시작.)

나: 근데 이거 다른 부서 담당자들도 다 각자 하는 일이고 내 일이 아닌데?  

동료: 내가 얼마나 바쁜지 알아? 그리고 나 그거 복잡해서 기억못해 니가 가르쳐줘도 또 까먹을꺼야.

나: 그럼 메일로 보내줄께 담번에 보면서 하게. 진짜 쉬워.

동료: (이때 부터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하고 거의 전화기에 소리를 침) 아니야 시간낭비 하지마. 나 그런일이 낭비할 시간 없어. 얼마나 바쁜데.. (업무 나열.) 너가 할 시간 없으면 하지마. 놔두지 뭐. 

나: 알았어 그럼.

나는 전화를 끊고 업무 요청 메일에 답신으로 as per our phone conversation below is out of my roles and responsibilities. 라고 보냄. 

전화를 끊고도 황당하기 짝이 없어 하고 있는데 HR이 걸어오더니 방금 Maxine이랑 전화한게 너야? 무슨 일로 그러는지 얘기해 줄래? 그래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어떻게 알았냐고 물으니 온 사무실에 다 들렸다며 Maxine이 너무 rude 해서 자기가 면담을 하려고 하니 메일로 업무 내용을 요약해 달라고 했다. 

그러고 나니 맞은편 pod에 있던 직원이 와서 괜찮냐고 저 여자가 아침에도 자기한테 그랬다며 요즘 무슨 문제가 있는것 같다고 나름 위로를 하고 갔다. 잠시 후 Maxine은 사무실 여기 저기를 돌아다니며 직원들과 잡담을 하기 시작했고 웃고 떠들고...

이건 뭐지 하고 있었는데 HR이 기다리다가 얘기좀 하자고 미팅룸으로 가서 한시간 만에 나왔다. 조금 전 그 직원한테 가서 Maxine은 바쁘다더니 돌아다니면서 농담할 시간은 있나보다고 했더니 안그래도 Maxine이 내가 그녀에게 보낸 이메일 답장을 보여주면서 자기 일도 아니라고 했단다. 그것 땜에 너네 웃은거냐고 했더니 그건 아니란다. 똑같은 것들. HR이 미팅룸에서 한시간 만에 나오더니 면담 끝났고 Maxine이 사과를 할거라고 얘기했고 1분 뒤에 Maxine은 HR을 CC를 넣고 미안하다고 사과 이메일을 보냈음. 너무나 속이 보이는 형식적인 이메일에 답장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고 씹었다. 

모두가 퇴근하고 나서 Maxine이 오더니 미안하다고 자기가 일이 많고 스트레스가 많아서 그랬다며 울먹울먹. 자기 엄마가 아프다고. 헌데 그 변명은 너무 많이 써먹어서 이제 귀에 못이 박힐 지경. 직원들도 그녀가 우는건 HR 때문이라고 신경도 쓰지 말라고 했다. 뭐라 할 말이 없어서 apology accepted 라고 한마디 하고 알았다고 했다. 그 다음날인 오늘도 아침부터 돌아다니면서 여기저기 노닥노닥 하하 호호 하고 웃던 Maxine은 내 자리에 와서 또 자기 엄마가 아직도 아프다고 운다. 한번만 더 울면 다른 사람들이랑은 웃다가 내 자리에 와서 우는건 가식적이라고 그만하라고 말하련다. 거짓말인게 너무 보이고 아침부터 우는 꼴이 보고 싶지가 않다. 

그녀의 이런 비이성적이고 비인간적인 언행이 처음이 아닌것을 HR도 알고 전직원이 다 아는데도 아무것도 달라지는게 없다. 호주는 그런 곳이다.

Maxine과 한 pod에서 일하는 영국에서 이민온 직원은 감수성이 예민해서 자기도 종종 겪었는데 그럴때마다 참지말고 바로 왜 기분이 나빴는지 말하고 너도 화를 내라고 한다. 한국에 있는 친구도 얘기를 듣더니 맞아 가만히 있으면 만만하게 본다구 라고 응수했다. 그래 싸우자.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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